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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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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에서 삶과 신앙 바로 설 때 교회도 바로 서”

전북기독신문 입력 2026-05-23

김대성 목사(전주서일교회)

 전주서일교회 김대성 담임목사는 자신의 목회 여정을 돌아보며, 부르심 앞에서의 갈등과 순종의 과정을 담담히 풀어냈다. 

김 목사의 목회는 타인의 권유에서 시작됐다. 1990년대 초, 오랜 기간 찬양사역자로 활동해 온 그는 주변 지인들의 추천을 받으며 목회의 길을 고민하게 됐다. 

학창 시절부터 찬양 의 은사를 받아 리더로 섬겼고,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악기를 다루며 찬양을 인도했다. 군 복무 중에도, 제 대 이후 개척교회 사역에서도 그의 중심에는 늘 찬양이 있었다. 

김 목사의 모교회는 전주순복음교회다. 1980년대 초중반, 동창배 목사가 섬기던 시절 그는 이 교회에서 중·고등부를 거쳐 청년 시절을 보냈다. 

그에게 전주순복음교회는 단순한 출석 교회가 아니라 신앙과 삶의 기초를 다진 영적 토대였다. 학창 시절 그는 기타를 배우며 찬양 사역에 눈을 떴고, 이후 전공으로까지 이어졌다. 

또한 전기 엔지니어 기술까지 익히며 삶의 실용적인 영역도 함께 준비했다. 군 복무 기간 역시 그의 신앙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군대 내에서 찬양팀을 조직하고 리더로 섬기며 공동체를 이끌었다. 제대할 때까지 찬 양 사역의 중심에 서 있었고, 제대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교회 찬양 인도자로 헌신의 자리를 이어갔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그는 점차 목회자로서의 하나님의 부르심을 인지하게 됐다. 그러나 목회의 길은 결코 가볍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그는 “목회의 길이 쉽지 않다는 생각에 쉽게 순종하지 못했다”라고 회상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가족이었다. 

남매 가운데 목회자가 있었고, 이들의 격려 와 도움은 그에게 용기를 주었다. 결국 그는 순종의 길을 택했고, 내려놓지 못했던 부분들 또한 시간이 흐르며 하나씩 내려놓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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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부터 찬양하며 믿음을 키워 온 김대성 목사는 하나님과의 영적 체험으로 목회자가 되어 교회와 신학원에서 삶과 믿음의 일치를 가르치며 실천에 힘쓰고 있다.

그의 목회 철학은 삶과 신앙의 일치를 강조하는 데 있다. 그는 “성도들에게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다섯 자녀의 아버지로서, 가정에서도 신앙의 본을 보이기 위해 힘써왔 다. 강단에서의 모습과 가정에서의 모습이 다르지 않도록 몸부림쳐온 것이 그의 목회의 중요한 축이다. 

김 목사의 목회 방침은 “성경대로 살자”는 것이다. 신학교 시절 다양한 독 서를 통해 신앙의 기초를 다졌지만, 결국 그의 목회 철학은 성경 중심의 삶으로 귀결됐다. 

그는 말씀과 기도, 그리고 신앙 실천을 핵심으로 삼고 이를 성도들에게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 

특히 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가정예배’다. 그는 “교회 안에서의 신앙뿐 아니라 교회 밖, 특히 가정에서의 신앙이 중요하다”라고 강조 한다. 

신앙은 특정 공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삶 전반에서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김 목사는 “가정에서의 삶과 신앙이 바로 설 때 교회도 바로 선다”라며, 성도들이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 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당부했다. 

목회의 길은 때로는 자발적 결단이 아닌, 순종의 과정 속에서 시작되기도 한다. 바울신학원 교수이자 지역 교회를 섬기고 있는 김 목사 역시 그러한 여정을 걸어왔다. 

그는 섬기던 담 임목사의 권유로 신학공부를 시작했 다. 스스로의 확신보다는 순종에 가까운 선택이었다. 

현재 그는 바울신 학교에서 강의를 맡고 있으며, 지난 20여 년의 시간을 돌아볼 때 감사가 앞선다고 고백한다. 

초기 사역은 전주덕진교회에서 전도사로 시작됐다. 유초등부와 중·고등부를 담당하며 다음 세대를 섬겼고, 또래 목회자들과 함께 사역하며 자연스럽게 목회에 대한 도전을 받았다. 

그러던 중,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자녀 중 첫째를 데려가시겠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그는, 그 사건을 계기로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목회의 길에 온전히 순종하게 됐다. 

이전 까지 반신반의했던 신앙과 사역의 태도는 이때를 기점으로 분명해졌다. 

그는 동기 목회자인 정대진 목사를 향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는 모습, 변하지 않는 태도, 초지일관의 삶이 인상 깊었다” 라며 “목회자가 반드시 가져야 할 덕목을 몸소 보여준 분”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그는 시골 지역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초기 성도는 20여 명으로, 젊은 부부들을 중심으로 공동체가 형성됐다. 5년의 시간을 인내하며 사역하던 중, 서일교회 담임목회자와의 대화를 통해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대화와 기도 끝에 양 교회는 ‘합병 아닌 합병’이라는 독특한 형태로 하나가 되었고, 현재는 약 40여 명의 성도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로 성장했다. 

그는 이 과정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은혜”라고 표현 한다. 김 목사의 목회 철학은 ‘교리를 통한 제자 양육’이다. 

그는 매주 수요 예배를 통해 조직신학을 중심으로 한 교리 강의를 진행하며, 성도들이 하 나님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돕고 있다. 약 3년의 과정을 통해 체계적으로 말씀을 가르치고, 이를 기반으로 세상 속에서 담대히 복음을 전하는 제자를 세우는 것이 목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훈련 방식에 근거한 것으로, 과거 한국교회 제자훈련 운동의 흐름과도 맥을 같이한다. 

그는 현재 바울신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을 가르치며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해당 신학교는 예장개혁 교단 소속으로, 전북 지역 5개 노회 가 협력해 운영되고 있으며 70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지금까지 4천 명 이상의 졸업생을 배출한 이 학교에서 그는 교수이자 홍보처장으로 섬기고 있다. 

그의 삶에서 아내 송선주 사모는 그의 신앙과 목회를 지탱하는 가장 든든한 동역자다. 그는 “아내는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의심하거나 반대하지 않았다”라며 “목회가 힘들고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끝까지 기 도하며 지지해 주었다”라고 했다. 

자녀 중 첫째는 직장 생활을 하며 신학교 진학을 준비 중이고, 둘째는 패션 을 전공해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셋째는 제과 분야에서 일하고 있으며, 넷째는 교대를 다니며 교사 임용을 준비하고 있다. 막내는 올 해 군에 입대했다. 

특별한 점은 자녀 모두가 다양한 악기를 다루며 자연스럽게 찬양팀을 구성했고, 가정 자체가 하나의 예배 공동체로 이어지고 있다. 

/임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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