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서문교회 김석호목사
최근 전주시장로교회연합회(회장 이상규 목사) 회장으로 선출된 김석호 목사(전주서문교회)는 지역 교회 연합과 대외 사역 강화를 다짐했다.
김 목사는 취임사를 통해 신앙적 책임과 사회적 역할을 동시에 강조하며 향후 사역 방향을 제시했다.
김 목사는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면서 낙심하지 않는 것 또한 주님의 명령”이라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깊이 기도하며, 한 해 동안 전주시장로교회연합회를 믿음 안에서 최선을 다해 섬기겠다”라고 밝혔다.

신학교 교수 재직 때 청빙 제안을 받고 서문교회 목사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부르신 것이라고 믿는 김석호 목사는 예배 회복이 모든 사역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전주시장로교회연합회는 9개 장로 교단, 약 800여 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구로 북한 어린이 돕기, 베트남 우물 파기 등 다양한 국제구호 활동을 통해 복음 전파와 인도적 지원을 병행해 왔다.
이는 지역 교회 연합이 단순한 내부 결속을 넘어 글로벌 사 회적 책임을 다해 왔음을 보여준다.
김 목사는 향후 연합회의 핵심 과제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는 장로 교단의 정체성 회복이다. 그는 교단 간 연합이 형식적 수준에 머물지 않고, 신학적 정체성과 공동의 가치 위에서 더욱 견고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둘째는 북한 어린이 지원 사역의 확대다. 김 목사는 “북한 동포 중에서도 가장 어려움을 겪고 있는 어린이들에 대해 더 큰 배려와 열정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다”라며 지속적이고 실질적인 지원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 목사는 “지난 2년간 전주시장로 교회연합회의 사역이 사실상 단절되었고, 충분히 돕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라며 특히 북한 어린이들을 직접 돕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회원 교회와 목회자들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역으로 나아가기를 소망한다”라며 “모든 회원 교회 위에 소망이 넘치는 사역이 회복되기를 기도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올해로 서문교회 담임 10년을 맞은 그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깊은 성찰도 내놓았다. “세월이 빠르게 지나 갔다. 10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게 된다. 시간이 유수와 같다는 것을 절감한다. 아쉬움도 있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 서문교회는 올해로 설립 133주년을 맞았다. 호남 지역의 모교회로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이어왔지만, 그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도 겪었다.
김 목사는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지만 그만큼 교회가 성숙해졌다”라며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라고 했다.
특히 그는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가 직면한 현실을 진단했다. “코로나를 겪으며 많은 교회가 어려움을 경험했고, 여기에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가 겹치면서 교회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라며 “어린아이들이 교회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의 본질 회복 을 가장 중요한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믿음의 본질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교회를 세우는 것”이라며 “예배를 중심으로 한 영적 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서문교회는 지난 10년간 프로그램 중심의 성장 전략보다는 본질 강화에 힘써왔다. 구역 조직을 소그룹 중심으로 전환하고, 말씀과 기도 중심의 공동체를 세우는 데 힘써왔다.
그는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최소화하고, 교회의 기초를 다지는 데 집중해왔다”라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교회의 회복을 ‘체질 개선’에 비유했다. “사람도 건강을 잃 으면 단번에 회복되지 않듯, 교회 역시 마찬가지”라며 “좋은 음식과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을 회복하듯, 교회도 말씀과 기도라는 본질을 회복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교회의 지속 가능한 성장은 외형이 아니라 내면의 건강에서 시작된 다”며 “말씀과 기도운동, 곧 예배의 회복이 모든 사역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믿지 않는 가정에서 자란 김 목사는 공무원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비교적 안정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 속에 신앙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던 그의 삶은 대학 시절 한 친구의 소개로 전환점을 맞게 된다.
김 목사는 당시 ‘DSM선교회(빚진자 들선교회)’를 통해 신앙을 접했다.
그 는 “그 시절은 열정 하나로 신앙생활을 하던 때였다. 대학과 대학원 시절 을 뜨겁게 보냈지만, 신앙의 기초는 여전히 부족했다”고 회상했다.
초기 멤버이자 개척 멤버로서 헌신했지만, 순수한 열정만으로는 신앙의 깊이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간이었다. 그의 신학적 전환은 주변에서 일어난 연속된 사건들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가까운 친구가 이단에 빠지는 아픔을 겪었고, 존경하던 선배 선교사가 필리핀 사역 중 교통사고로 소천하는 일을 경험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이어지면서 내가 알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다는 갈망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신학의 길로 이어져 장로교의 뿌리를 탐구하기 위해 영국과 스코틀랜드로 유학을 떠났고, 학부와 석사, 박사 과정까지 마치게 됐다.
그는 “신학의 출발은 지식이 아니라 질문이었다”라며 “삶 속에서 마주한 사건들이 하나님을 더 깊이 관찰하게 만들었다”라고 강조했다. 목회의 길 역시 그의 계획과는 달랐다.
김 목사는 오랜 기간 신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해왔다. 그러나 신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여러 문제들, 특히 죄와 불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서 회의감을 느끼게 됐다. 그 시기 전주서문교회로부터 담임목사 청빙 제안을 받았다. 그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부르셨다고 생각한다”라며 “당시 서울 왕십리교회에서 협동목사로 섬기고 있었는데, 한 장로님의 권면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그는 강단이 아닌 교회를 선택 했고, 목회의 자리로 나아가게 됐다. 김 목사의 사역에는 가족의 헌신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아내 강영란 사모는 선교단체에서 만나 결혼한 동역자다.
그는 “아내는 원래 목회자의 길을 원하지 않았고, 나 역시 목사가 될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길로 인도하셨 다”라고 말했다.
강 사모는 드러나기보다 뒤에서 기도와 섬김으로 사역을 돕는 스타일이다. 김 목사는 “아내는 사람들 앞에 나서기보다 묵묵히 기도하며 교회를 섬기는 사람”이라며 “그의 헌신 덕분에 목회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고 감사를 전했다.
슬하에 1남 2녀를 둔 김 목사는 자녀들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히 살아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첫째 딸은 영어유치원 교사로, 둘째는 강릉에서 간호사로 근무 중이며, 막내는 전북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다. 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 했다.
/임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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