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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도전 정신, 교회가 계승해야 할 가치”

전북기독신문 입력 2026-03-14

군산선교역사관장 서종표 목사

 군산에 위치한 군산선교역사관이 지역 교계와 기독교 역사 보존의 거점 으로 주목받고 있다. 

최근 역사관 관장으로 취임한 서종표 목사는 초기 호남 선교사들의 헌신을 계승하고, 그 정신을 오늘의 신앙과 삶 속에서 되살리는 데 사명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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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선교역사관 관장 서종표 목사는 방문자들이 초기 선교사들의 삶과 신앙을 본받고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역사가 이어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관장 서종표목사는 “1892년 호남 지역에 복음이 전해진 이후, 전킨 선교사를 비롯해 레이놀드 선교사 부부, 테이트 남매 등 수많은 선교사들의 헌신이 오늘의 전북 지역 교회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라며 “전라북도가 ‘전라복도’라 불릴 만큼 복음화에 기여한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본받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군산선교역사관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서 목사는 선교사 후손들을 직접 만나 유물과 자료를 수 집하는 한편, 국비와 도비, 시비 등 공적 재원과 자부담을 더해 역사관 건립을 추진했다. 

그 결과 역사관은 단순한 전시 공간을 넘어, 신앙과 역사 교육의 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는 “이곳은 건물을 자랑하는 공간이 아니라, 전국의 크리스천과 비기독교인 모두가 방문해 초기 선교사들의 삶과 신앙을 접하고, 복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는 통로”라며 “방문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삶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선교사들의 도전 정신 역시 오늘날 교회가 반드시 계승해야 할 가치”라고 덧붙였다. 

서 목사에 따르면,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였던 전킨 선교사와 의사 드루 선교사는 군산에 정착한 뒤 우체국 인근 한옥 두 채를 매입해 선교 거점을 마련했다. 

이들은 사랑채에 약국과 진료소를 운영하는 동시에 예배 공간으로 활용하며 지역 주민들에게 복음과 근대 의료를 함께 전했다. 

이는 당시 열악한 의료 환경 속에서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기여했을 뿐 아니라, 자연스럽게 기독교 신앙이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교육 분야에서도 선교사들의 영향은 뚜렷하게 나타났다. 서 목사는 “현재 의 군산제일고등학교는 전킨 선교사가 1903년 설립한 영명학교에서 출발 했다. 영명학교는 1975년 교명을 변경하며 오늘에 이르렀다”라고 설명 했다. 

그는 “이 학교는 단순한 교육 기관을 넘어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중심지 역할을 했다. 특히 1919년 3월, 호남 지역 최초의 3.1 독립운동이 이곳에서 시작됐으며, 1940년에는 신사 참배를 거부한 이유로 폐교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일고등학교는 신학문 보급과 민족정신 함양이라는 사명을 지역사회에 깊이 각인시켰다. 

군산 선교의 핵심 거점 중 하나인 군산 구암교회 역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서 목사는 “1892년 전킨 선교사와 장인택 조사에 의해 설립된 이 교회는 단순한 종교시설을 넘어 병원과 학교 기능을 함께 수행했다. 

1899년 구암동산에 자리 잡은 이후, 호남과 충청 지역 선교의 교두보 역할을 하며 지역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1919년 3월 5일 군산 만세운동을 주도하며 독립 운동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이와 연계된 역사적 공간인 군산 3.1 운동 100주년 기념관에는 한강 이남 최초의 3.1 운동으로 평가받는 군산 3.5 만세운동 관련 유물들이 전시돼 당시의 역사적 현장을 오늘날까지 생생히 전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서종표 목사는 이러한 역사적 유산 을 바탕으로 지역 교계와 사회를 연결하는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군산중동교회 원로목사로 추대된 그는 전북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과 호성신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추명순전도사기념사업회 이사장, 월드비전 군산지회장, 한국군선교 연합회 전북지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 목사는 “군산의 선교 역사는 단순한 종교 활동을 넘어 교육과 의료, 그리고 민족운동으로 이어진 통합적  역  사”라며 “이 같은 유산이 지역 사 와 다음 세대에 올바르게 전승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서 목사의 목회 여정 역시 개척과 헌신의 연속이었다.

전도사 시절 정읍에서 교회를 개척해 20년간 목회했으며, 이후 군산중동교회에서 약 20년간 사역했다. 

이후 3개월 전에 담임목사 직에서 은퇴해 현재 선교역사관 관장으로 새로운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서종표 목사의 신앙 여정은 군 복무 시절을 기점으로 뚜렷한 전환점을 맞는다. 그는 “군 입대 전까지는 교회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라고 회고하며, 당시 군 내에서 전개되던 ‘전군 신자운동’이 자신의 삶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군에서는 장병들이 기독교, 천주교, 불교 가운데 하나의 종교를 선택하도록 돼 있었다. 

서 목사는 “동기를 따라 교회에 출석하게 됐고, 그 과정에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그 교회에서 세례를 받으며 신앙의 기초를 세웠고, 군 복무 중 소명을 확신하게 됐다”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체험은 그의 진로를 결정짓는 계기가 됐다. 그는 전역 직후 신학의 길로 들어섰고, 이후 목회자로 헌신하게 됐다. 특히 군에서 시작된 신앙의 뿌리는 이후 사역 방향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서 목사는 “군선 교를 약 40여 년간 섬겨왔고, 지금도 계속해서 군선교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라며 “군에서 받은 은혜를 다시 군으로 돌려드리는 마음”이라고 말 했다. 

서 목사의 아내 박정자 사모는 초등학교 동창으로, 어린 시절부터 동반자의 역할을 이어왔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연극을 함께 하며 가까워졌고, 당시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 이야기에서 부모 역할을 맡았던 기억이 있다”라며 웃음을 보였다. 

그의 목회 여정에서 박 사모는 함께했다. 박 사모는 항상 든든한 역할을 감당해 왔다. 자녀들 역시 각자의 영역에서 신앙과 소명을 이어가고 있다. 

아들은 목회 자의 길을 걷고 있으며, 딸은 총신대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한 뒤 현재 반주자로 음악 활동을 하고 있다. 

서 목사의 삶은 개인적 회심에서 출발해 목회와 군선교, 그리고 가정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보여준다. 군에서 시작된 신앙의 경험이 평생의 사역으로 확장됐다는 점에서, 그의 이야기는 신앙 형성의 다양한 경 로와 그 지속성을 보여준다. 

/임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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