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진 장로 (부귀중앙교회)

평생을 기도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고난의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순종의 삶을 살아 온 진안군의회 의원 이명진 장로(부귀중앙교회)
그는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기도하는 어머니를 따라 신실한 믿음생활을 하 며 공무원과 정치인으로서 타협하지 않고 원칙의 삶을 살아왔다. 공무원의 영예인 청백봉사상을 받기도 한 이명진 장로를 만나 보았다.
- 신앙생활은 어떻게 하게 됐는지?
“어릴 적 아버지 때문에 가족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4형제였던 우리 집은 어머니가 어렵게 우리 형제들을 키웠다. 어머니가 31살이고 제가 3살 때 우 리 형제는 어머니와 함께 진안 부귀에서 아버지에게 쫒겨나 진안 마령 외갓 집 오두막집에 살았다. 가정형편이 너무 힘들어 큰형과 작은 형이 초등학교 를 다니다 쌀 한 가마니를 받고 머슴살이로 갈 수밖에 없었다. 나와 동생은 형들이 보내준 쌀 덕분에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구박과 따돌림으로 너무 힘들어 교회를 다니면서 기도로 살았다. 어머니의 기 도가 없었다면 우리 4형제는 아마 흩어져 더 힘들었을 것이다. 어느날 아버 지가 작은 어머니랑 살다가 헤어지게 되자 우리 형제들은 다시 부귀로 돌아 오게 됐다. 11살이었던 나는 그제야 3년 늦게 초등학교를 입학할 수 있었고 어머니도 다시 부귀중앙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나도 어머니 따라 교회를 나갔고 그때부터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해 주셨다. 난 교회 모든 활동에 앞장섰다. 교사, 성가대에서 봉사를 했는데 특히 크리스마스에는 내가 직접 성극 을 연출하여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 공무원으로서 신앙생활은 어땠나?
“저는 일찍 결혼해 처가살이를 했는데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 을 때 장인어른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처갓집에서도 살길이 막막했다. 그래서 7급 준비를 그만두고 다음 달에 9급 시험을 보고 합격해 공무원이 됐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처음 공무원 급여를 받으면서 십일조를 주님께 바치겠다고 기도 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30년 간 십일조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또 내가 어릴 적 집이 가난해 학교를 못갔는데 중·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타고 학교를 졸업했다. 그때 장학금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나도 커서 나처럼 불우한 학생에게 꼭 장학금을 기부해야겠다고 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그 약속을 변치 않고 매 월 십일조와 함께 매년 장학금을 기부 하고 있다.”
- 공직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적은?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보니 힘든 일이 많았다. 특히 진안 마이산에 기센 터를 만들어 전국 무당들이 모여 행사를 한다고 했을 때 내가 다니는 부귀 중앙교회가 끝까지 반대하여 행사를 못하게 됐는데 내가 부귀중앙교회 장 로였기 때문에 핍박을 받았고 승진 못하고 한직으로 밀려나기도 했다. 하지 만 그때마다 하나님이 지켜 주기고 인도 해 주셨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 계 시고 역사하심을 확신했다.”
- 공무원으로 재직 제35회 청백봉사상을 받았는데.
“공무원 십만 명 중 1년에 각 시‧도에 서 한 명씩 추천해서 그동안 공적을 심 사하여 받는 상으로 최고의 명예로운 상을 받았다. 덕분에 이 상을 받고 몇 년 빨리 승진도 할 수 있었다. 지난해 장남 결혼식을 주변에 안 알렸는데 뒤 늦게 지역과 언론에서 화제가 된 일이 있다. 지역 의회의원이고 큰 교회 장로로서 그동안 수많은 애·경사를 다녔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 결혼식에 지인들을 초대하여 축하받고 싶었지만 축의금 명목의 금품을 받고 싶지 않았다. 4녀 1남의 자녀들을 포함해 10여 명이 하나님의 축복가운데 결혼식을 했다. 10년 전에도 다섯자녀를 키우느라 가족들이 헌 옷을 구해 입어야 겨우 생계를 유지할 형편이었지만 딸 결혼식을 알리지 않았다. 4년 전 정천면 면장을 끝으로 퇴임할 때 해외여행 지원도 거절했다. 나는 교회에서 조용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믿음을 더욱 굳게 해 주셨다. 또한 17년째 돼지 뼈다귓국을 끓여서 집사람 이영미 권사와 함께, 혼자 사시는 어르신 40여 명에게 나누어 드리고 있다. 또 지금은 돌아 가시면 화장을 많이 하지만 지금까지 300여 구 이상 시신을 운구하여 매장도 해 드렸다.
- 정치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민원봉사실 과장 때 지역 주민을 대 상으로 많은 민원을 해결했는데 그때 주민들이 붙어준 별명이 민원해결사였다. 하지만 공직생활을 하면서 봉사를 한다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하나님께서 기도 가운데 강하고 담대하게 나가라고 했다. 작은 마을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 됐다. 주민들이 그 동안 내가 해 온 일들을 기억해 주셨다.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하나님께서 앞으로 더 섬김의 봉사를 하라고 사명을 주셨다. 언제나 초심을 버리지 않고 기도하는 장로로서 하나님 영광을 위해 언제 어디든 달려가며 무슨 일이든 주님께 하듯 주민들을 위해 헌신을 다 하겠다.”
/오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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