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무엘 목사(전주은진교회)
전주은진교회는 지역 교회를 넘어 국내외 선교에 집중하는 교회로 알려져 있다.
18년째 목회를 이어가고 있는 노사무엘 목사는 자신의 사역을 한마디로 ‘선교하는 목회’라고 정의 한다.
노 목사는 “저는 하나님께서 선교하는 목사로, 특별히 행정적 목회자이자 선교 행정가, 선교 전략가로 세워주신 것 같다”라며 “직접 선교지로 나가는 선교사는 아니지만, 선교를 계획하고 지원하며 교회와 선교지를 연결하는 사역에 지속적으로 쓰임 받고 있다” 라고 말했다.

노사무엘 목사는 교인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로 지난 18년 동안 선교하는 목회에 힘써 왔다고 밝혔다.
노 목사는 목회 사역 중에도 보다 깊은 성경 이해와 신학적 통찰을 얻기 위해 이스라엘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세계적인 학문의 중심지인 히브리 대학교에 편입해 히브리어와 유대 문화, 성경의 역사적 배경을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약 2년간의 유학 생활은 성경 원어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이스라엘 유학 이후에도 학문에 대한 도전은 계속됐다.
그는 미국의 세계적인 복음주의 신학교인 풀러신학교에서 4년 과정의 선교학 과정을 수학하며 세계 선교의 흐름과 전략을 연구했다. 이를 통해 지역 교회를 넘어 세계 복음화에 대한 비전을 더욱 구체화할 수 있었다.
학문적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통일목회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하며 한국교회가 감당해야 할 통일 시대의 목회적 과제까지 연구 영역을 확장했다.
그의 관심은 언제나 교회와 선교 현장에 맞춰져 있었다. 학문은 목회를 위한 도구였고, 연구는 복음 사역을 위한 준비였다.
실제로 노 목사는 목회 사역과 더불어 선교 현장에서도 활발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는 합동총회 세계 선교회인 GMS 임원으로 섬기며 국내외 선교 사역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와 미래 통일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설립된 통일목회개발원에서도 임원으로 활동 하고 있다.
“은진교회에서 18년 동안 담임목사로 사역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선교였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복음을 전하고 선교에 동참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실제로 전주은진교회는 교회 재정의 상당 부분을 국내외 선교에 사용한 다.
현재 국내외 33개 선교지를 후원 하고 있다. 해외선교를 위해 태국에 은진교회를 설립하고 선교사를 파송해 현지 사역의 기반을 마련했다.
현재는 현지인 사역자가 담임을 맡아 교회를 섬기고 있으며, 매년 단기선교팀을 파송, 사역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한 가정을 태국 선교사로 파송해 복음 전파와 지역 섬김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필리핀에서도 교회 개척과 선교사 파송 사역이 진행되고 있다. 전주은진교회는 필리핀에 ‘이글루은진교회’를 설립하고 박경숙 선교사 가정을 파송 해 사역을 지원하고 있다.
박 선교사 는 현지 아동들을 대상으로 교육 및 복음 사역에 집중하고 있으며, 교회는 정기적으로 선교 현장의 소식을 영상으로 접하며 함께 기도하고 있다.
노 목사의 목회 동기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목회 현장에서 시작됐다. 그는 목회자인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목회자의 꿈을 품었다. 그러나 교회 안팎 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어려움, 그리고 목회자로서 고난을 감당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목회의 길을 포기하기로 결심하기도 했다.
목회를 향한 꿈을 접었던 노 목사의 인생은 군 복무 기간 중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았다.
군 생활 중 교회 중·고등부 학생들이 위문 예배를 위해 부대를 방문했고, 그들의 찬양과 신앙 고백을 통해 다시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됐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찬양을 드리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인간적인 감정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진실한 신앙의 고백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됐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됐습니다.” 이 경험은 그의 진로를 완전히 바꾸 어 놓았다.
일반대학을 졸업한 뒤 그는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며 본격적으로 목회의 길에 들어섰다.
노 목사는 당시 자신을 다른 신학생들과 비교하며 부족함을 많이 느꼈다고 회상했다. “다른 목회자들과 비교하면 부족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족한 저를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도구로 사용해 주신다면 다른 목회자들의 절반이라도 쓰임 받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하며 헌신했습니다.”
그는 이 고백이 오늘까지 이어지는 목회의 출발점이 됐다고 말했다. 노 목사는 자신의 목회 여정에서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존재로 성도들을 꼽았다.
“저는 부족하고 목회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장로님들을 비롯한 성도들께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고 감싸주셨습니다. 부족한 저를 받아주시고 지금까지 변함없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그는 교회가 성장하고 사역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성도들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은 저희 아버지 노일식 목사님입니 다.” 이 고백에는 평생 목회 현장에서 헌신해 온 아버지에 대한 깊은 존경과 감사가 담겨 있다. 노 목사는 아버지 노일식 목사가 목회지를 옮길 때마다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고 건축하며 복음의 터전을 세워온 삶을 회고했다.
노일식 목사는 익산에서 성일교회를 개척해 지역 복음화에 힘썼다. 그는 “성도 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한 가족처럼 교회와 목회자를 섬겼다”라며 “함께 울고 웃으며 교회를 세워가던 그 시절은 지금도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다” 라고 말했다.
그의 사역 뒤에는 또 다른 든든한 동역자 정원엽 사모의 헌신이 자리하고 있다. 정 사모는 전북극동방송 설립 초기부터 ‘소망의 기도’ 코너를 맡았고, 마마기도회와 어머니학교 사역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내려놓고 남편인 목회자를 위한 기도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하나님 나라 안에서 살아가는 2남 2 녀 가족에 대한 감사도 빼놓지 않았다. 특히 막내딸은 전도사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
/임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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