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산열린교회 고명호 목사
중화산열린교회 고명호 목사가 지 난 6일 중화산교회와 전주열린교회의
합병을 공식 확정하고, 위임목사 감사예배를 드렸다.
고명호 목사는 합병의 전 과정을 ‘기적같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며 “하
나님의 섭리가 아니었다면 결코 이 합병이 없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고명호 목사는 지난 교회 합병은 기적 같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라며 두 교회의 장점을 모아 교회를 안정화 시키고 지역을 섬기는 교회의 사명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고 목사는 전주로 사역지를 옮긴 이후 상가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그러
나 상가교회가 갖는 환경적 한계와 시대적으로 어려워진 전도 환경은 그의
고민을 깊게 만들었다.
그는 “작은 부지를 구입해 교회를 건축할 것인지, 기존 교회 건물을 매입할
것인지, 아니면 다른 교회와 합병할 것인지 세 가지 선택지를 두고 하나님
께 기도했다”라고 했다. 1년여간의 기도 끝에 ‘합병’의 길이 열렸고, 이는
곧 중화산교회와 전주 열린교회의 하나 됨으로 이어졌다.
고 목사는 “절망처럼 보이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준비하신 길이 있었
다”라며 “합병은 하나님의 명확한 응답”이라고 고백했다. 고명호 목사는 합
병 이후의 방향에 대해 “중화산교회가 지녀온 비전을 그대로 계승하면서,
제 목회 철학을 더해 남은 기간 담임목사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
다.
그는 “두 교회의 장점을 모아 교회의 내적 안정과 외적 부흥을 함께 이루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며 “지역과 지역민을 섬기는 교회의 사명을 더욱
강화하겠다”라고 말했다.
고 목사는 자신의 31년 목회 여정을 돌아보며 “젊은 시절에는 열심히 뛰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목회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 깊이 깨
닫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가 강조하는 목회철학은 ‘저수지 목회’다. “하나님께서 제게 부어주신 사
랑과 은혜가 흘러넘치도록, 그래서 그 은혜가 성도들에게 전해지고, 다시
세상으로 흘러가도록 하는 것이 제 목회의 핵심입니다.” 그는 “31년 동안 하
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넘치는 통로가 되기 위해 달려왔다”라며 “앞으로도
교회가 은혜의 저수지가 되어 지역을 밝히는 공동체가 되도록 헌신하겠
다”라고 밝혔다.
광주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어린 시절 친구의 손에 이끌려 서광교회를 처
음 찾았다. 당시에는 단순히 친구를 따라 교회를 다녔을 뿐이었지만 그의
삶을 뒤흔든 역사적 사건,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신앙의 전환점을 만들었
다. 혼란의 시기 속에서 그는 인근의 한 교회를 찾았고, 그곳에서 인격적으
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깊이 경험했다. 그 교회는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
다. 신앙의 길을 먼저 걸어가던 선배들, 그리고 무엇보다 목회자의 인격적
모범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목사님의 인격을 닮고 싶었습니다.” 그는 그 시절을 회상하며 말했다.
누군가의 모범이 또 다른 소명을 일으키는 것처럼, 그는 자신 또한 누군가
에게 같은 영향을 주는 목회자가 되기를 소망하며 신학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30세의 나이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첫 사역지는 섬 지역이었다. 척박
한 환경 속에서도 그는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마주하며 목회의 기초를
다졌다. 이후 광주의 한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하며 6년 동안 대학부와
청년부를 맡아 섬겼다. 그 시기는 그에게 목회의 실제를 배우게 한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후 그는 개척교회의 길을 택했다. 개척은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그는 한 걸음씩 교회의 기초를 세워갔다.
기성 교회의 청빙을 받아 목회지를 옮겼고, 사역의 범위는 전주로 이어졌
다. 전주에서 그는 합병 과정을 거쳐 위임목사로 다시 한번 새로운 소명을
부여받았다.
“목회자의 사명을 다하겠습니다. 새로운 소망과 열정을 가지고 교회의 사명
을 감당하겠습니다.” 그의 다짐 속에는 수십 년의 여정이 담긴 깊은 울림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목회 여정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가 있다고
했다.
바로 아내, 김성희 사모다. 31년 간 사모는 그의 사역 앞에 단 한 번도
“NO”를 말한 적이 없었다. 어떤 결정에도 기도로 함께했고, 조언이 필요할
때는 조용히 격려의 말과 충고를 전했다.
그는 “선한 친구이자 평생 반려자이며, 든든한 동역자”라고 했다. 두 딸 고
우리, 고운누리도 악기와 성악으로 지난 한 해 동안 주일에 빠짐없이 예배
의 자리를 지켰다. 각 자의 자리에서 가족을 기도와 마음으로 지탱하는 소
중한 존재들이다. 그의 걸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람들을 향한 사
랑,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걸어온 가족의 헌신이 담겨 있다.
/임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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