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백학교회 송동원 목사
전주지역 지인들 사이에서 송동원 목사(백학교회 담임)를 기억하는 첫 이
미지는 ‘목회자’가 아니라 ‘백합 야간학교 교장’이었다.
그만큼 그의 인생에서 야간학교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김 목사가 25세 젊은 나이에 방황하던 청소년들을 모아 세운 작은 교실은,
어느덧 42년의 역사를 가진 전주의 대표적 대안교육의 터전으로 자리매김
했다.

할아버지의 소원대로 목회자가 된 송동원 목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야학을 운영하며 교회를 세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온몸으로 감당해 왔다.
김 목사는 낮에는 기술을 가르치고, 밤에는 글을 배우는 공간을 마련해 청
소년들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바랐다. 그 결과 지금까지 약 2,500
명의 졸업생과 700명의 교사 봉사자가 배출됐다.
그들 중에는 교사, 공무원, 시의원 등 지역 사회 곳곳에서 건강하게 자리 잡
은 이들도 많다. 김 목사는 이를 두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며, 제자
들의 삶을 바라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 목사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 신앙이 함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서서학
동에는 교회가 없어 남문교회에 다녔고,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칠봉교
회(현 밀알교회) 천막 예배당을 찾을 수 있었다.
그때 목회자의 사랑과 가르침이 그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가난은 친구였다”는 그의 고백 속에는 신앙으로 버텨낸 어린 시절의 기억
이 묻어난다.
현재 그가 담임하는 교회 역시 백학야간학교 공동체에서 시작됐다.
한 명, 두 명 모이며 세워진 교회는 작지만 건강한 교회로 성장했다. 교회는
매년 호박죽을 끓여 지역민들과 나누고, 봉고차로 아이들을 수년간 통학시
킨 일도 있었다.
그리고 학교 인근 30평 남짓한 부지에 예배당을 건축하며 이웃과 동행하
는 공동체로 자리를 지켰다.
김 목사는 “하나님께서 이 길을 인도하셨고, 제자들이 지역 사회에서 건강
하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감사이자 행복”이라고 전했다.
42년 전 작은 야학에서 시작된 사랑의 씨앗은 이제 전주 지역을 밝히는 등
불이 되고 있다.
백학교회는 30년 전 송동원 목사가 개척한 작은 교회다. 송 목사는 개척 초
기부터 ‘교회는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더 중요
하다’는 믿음을 붙들었다.
그래서 그는 전주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인 동서학동을 선택했
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이 많은 이곳이야말로 등대가 꼭 세워져야 할 자
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송 목사의 목회 뿌리는 가정사와도 깊은 연관이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선
교사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였고, 임실 갈담교회 개척교인으로 참여했다.
무엇보다 할아버지의 소원은 ‘자손 중에 목회자가 나오기를’ 바라는 것이었
다. 그 바람은 송 목사와 그의 사촌 이삼규 목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목사 안수를 받던 날, 고모들이 눈물로 기뻐하며 춤을 췄다는 일화는 지금
도 가족의 가슴에 남아 있다.
젊은 시절 일기장에 남겼던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섬기겠다”는 다짐은
목회 현장에서 그대로 실현됐다.
백합교회는 오랜 세월 지역민과 함께하며 가난한 이웃의 벗이자 등대 역할
을 감당해 왔다.
또한 37년 전에는 임실에 새로운 교회를 개척해 입당 예배를 드리며, 소외
된 마을에도 복음의 빛을 전한 바 있다.
가정적으로도 송 목사의 삶은 헌신의 연속이었다. 아내 이혜자 사모와 슬하
에 1남 1녀를 두었다. 두 자녀 모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부모의 뒷바라지
와 신앙적 가치관 속에 자라 세계로 뻗어 나갔다.
아들은 중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뛰어난 연주 실력으로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하며 대학교에서 4년 전액 장학금을 받았고, 현재
는 미국 플로리다 잭슨빌 심포니 오케스트라 악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딸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유학을 떠난 뒤 미국에서 학업을 마치고 귀국해 현
재는 유치원 영어교사로 일하며 부모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자녀들을 유학 보낸 배경에는 ‘더 크고 넓은 세상에서 배우고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송 목사와 그의 아내의 바람이 있었다.
넉넉지 못한 재정 형편 속에서도 가능했던 것은 아내의 헌신 덕분이었다.
피아노 전공자인 이혜자 사모가 학원을 운영하며 레슨으로 유학 자금을 감
당했다.
송 목사는 “야학 운영과 개척교회, 아이들의 유학까지 모두 아내의 수고와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백학교회의 지난 30년은 ‘가난한 이웃과 함께하는 목회’라는 송동원 목사
의 소명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오늘도 교회는 소외된 지역민 속에서 작은 등대처럼 빛을 밝히며, 그의 할
아버지가 기도하던 복음의 가문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임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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