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전주노회장 김경근 목사(나눔의교회)
통합 전주노회장 김경근 목사는 지난해 10월 전주노회장에 취임한 이후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하며 노회를 이끌어왔다.
그는 “취임 후 벌써 6개월이 지났는데, 돌아보면 상당히 바쁜 시간이었다”라며 “노회장이 되면 꼭 해보고 싶었던 일들이 있었지만 여건상 충분히 펼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라고 솔직한 심경을 전했다.
그러나 아쉬움에 머무르지 않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김 목사는 “남은 기간 동안 전주노회 발전을 위 해 최선을 다하겠다”라며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을 더욱 섬기고, 교회 부흥을 위한 정책을 구체적으로 마련해 나가겠다”라고 강조했다.
그의 목회 철학은 ‘함께 더불어’ 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교회를 개척한 이후 지금까지 이 원칙을 중심에 두고 사역을 이어왔다는 그는, 단순한 교세 확장이 아닌 신앙인의 삶의 방향에 초점을 맞춰왔다고 설명했다.
김 목사는 “교회 성장 자체보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와 가정 속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며 목회해왔다”라며 “성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도록 교육하는 데 힘써 왔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목회의 열매에 대해서도 그 는 조심스럽게 평가했다. “우리 성도들이 자신이 속한 자리에서 그리스도 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라며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감사할 따름”이라고 고백했다.
김 목사의 신학적 출발은 개인의 결단을 넘어 가정의 신앙적 유산과 깊이 맞닿아 있다. 그는 자신의 신학 동기 에 대해 “부모님의 영향이 결정적이었 다”라고 밝히며, 신앙의 계승 속에서 형성된 소명을 강조했다.
김 목사는 “저희 부모님 슬하에는 아들이 두 명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목회자가 되기를 서원하셨다”라며 “부모님께서 하나님께 서원을 하셨고, 아들 중 한 명이 신학을 한다면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라고 회고했다.
이는 단순한 진로 선택이 아닌 신앙적 책임과 순종의 결단이었다.
그는 1989년 신학교에 입학했다. 입학 이전에는 사회에서 직장 생활을 하 던 중이었으며, 이미 결혼해 딸을 둔 가장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함께 부모님의 서원의 약속에 순종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 했다”라고 밝혔다.
그의 표현대로 이 과정은 “하나님의 은혜이자 축복”이었다. 신앙의 뿌리 또한 가정과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그는 어린 시절 전주 중화산동에 거주하며 큰할아버지인 김중배 목사가 시무하던 전주중부 교회에 출석했다.
이후 큰할아버지의 은퇴를 계기로 시온교회로 옮겼고, 대학 시절에는 시온교회에서 분립된 산돌교회로 신앙의 터전을 옮겼다.
산돌교회는 그의 신학적 결단이 체화된 장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결혼과 함께 신학교 진학을 준비했으며, 당시 한일신학교 학장이던 강택현 목사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고조부로부터 이어온 믿음의 집안에서 자라나 자연스럽게 목회자가 된 김 목사는 교인들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도록 목회에 힘쓰고 있다.
그는 “강택현 목사님의 영향을 따라 신실한 목회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됐다”라고 밝혔다. 신학교 입학 이후 그는 교회 전도사로 사역을 시작하며 목회의 길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이후 군산동신교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교회를 개척하는 등 목회 현장에서 사역을 이어왔다.
김 목사의 신앙은 개인적 결단을 넘어, 세대를 관통해 이어져 온 ‘믿음의 유산’ 위에 세워졌다. 그의 신앙 여정은 가문의 역사, 개인적 체험, 그리고 신앙적 스승들의 영향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형성됐다.
김 목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계기는 산돌교회를 섬기던 시절, 전남 장성의 한 기도원에서 열린 여름 수련회였다. 그는 청년들과 함께 기도하던 중 깊은 영적 체험을 하며 소명을 확신하게 됐다고 회고한다.
김 목사의 신앙은 이미 오래전부터 그 뿌리가 형성돼 있었다. 그는 고조부 에서 이어져 내려온 신앙의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되던 초기부터 가족의 믿음이 시작됐다고 설명한다.
그의 선조들은 지역 교회 개척에 헌신하며 삼례제일교회를 세웠고, 신앙을 사회적 책임으로 확장해 삼례 지역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영흥학교를 설립했다.
이 학교는 오늘날 삼례중앙초등학교로 이어지며, 신앙이 교육과 지역사회 발 전으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다.
이처럼 신앙과 섬김이 일상 속에 아 있는 환경에서 성장한 김 목사는 자연스럽게 믿음을 삶의 중심 가치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는 “어릴 적부터 믿음의 가문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라며 신앙이 선택이 아닌 삶의 토대였음을 강조했다. 김 목사의 신앙 형성에는 스승들의 영향 또한 크게 작용했다.
시온교회 출석 당시 담임이었던 박복윤 목사는 그의 신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월남 이후에도 굳건한 믿음을 지켜온 박 목사는 삶과 신앙의 모범으로, 김 목사에게 신앙의 실제적 모습을 몸소 보여줬다. 김 목사는 “보고 배우며 신 앙의 길을 익혔다”라고 회상한다.
또한 산돌교회 담임을 맡았던 강택현 목사 역시 중요한 멘토였다. 김 목사는 두 목회자를 통해 신앙이 단 한 교리적 이해를 넘어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할 가치임을 깊이 깨닫게 됐다고 전했다.
김 목사는 자신의 사역 여정에서 아내 홍명자 사모의 헌신과 신앙을 빼 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한다.
김 목사는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 아버지의 소개로 홍 사모를 처음 만났다. 당시 아버지는 그녀를 “신실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흥미로운 점은 홍 사모의 가정이 교회를 다니지 않던 환경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배경 속에서도 그녀는 스스로 신앙을 지키며 교회를 출석했고,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특히 김 목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홍 사모의 삶의 태도였다. 그는 “아내는 직장에 출퇴근하면서도 교회에 들러 기도하던 사람이었다”라며 “그 이야기를 듣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라고 회상했다. 일상 속에서도 신앙을 우선순위에 두는 모습은 김 목사에게 강한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신앙 여정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김 목사가 신학교 진학을 결심했을 당시, 홍 사모는 현실적인 이유로 이를 반대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 목사는 하나님께서 삶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신학의 길로 나아갔다. 그는 “당시에는 분명한 사명감 에 대한 소신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후 신학 과정과 목회 사역 속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홍 사모는 오히려 더욱 하나님께 매달리며 기도로 남편을 돕는 동역자가 되었다.
/임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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