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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초기 자생적 신앙공동체 전통 보여줘”

전북기독신문 입력 2026-04-11 조회 211 댓글 0

방관전 목사

 합동 총회가 전북 지역 교회 세 곳을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로 지정하고 감사예배와 지정식을 진행했다. 

지역 교회의 신앙 유산을 보존하고 한국교회 초기 복음 전파의 발자취를 재조명하기 위한 취지다. 

총회 역사위원회는 지난 3월 6일 전주중인교회에서 역사사적지 지정 감사예배와 지정식을 열고 전주중인교회와 구이중앙교회, 전주유상교회를 각각 역사사적지 제48·49·50 호로 지정했다. 


이날 행사에는 역사 위원회 위원들과 전북노회 관계자, 각 교회 성도와 지역 교계 인사들이 참석해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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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전 목사는 자신의 삶과 목회의 여정이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다면서 앞으로도 겸손히 사명을 감당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방관전 담임목사는 인사말을 통해 “전주유상교회는 한국교회 초기 자생적 신앙 공동체의 전통을 보여주는 사례다. 유상교회는 1906년 전주군 유상리 일대 마을 주민들이 허허벌판에 ‘ㄱ’자 형태의 예배당을 직접 세우면서 시작됐다”라며 “외국 선교사의 주도로 설립된 것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교회를 건축하고 예배를 드리며 신앙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라고 밝혔다. 

유상교회는 이후 1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지역 교회 설립과 복음 확산에 기여하며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해 왔다. 

초대 담임 이일문 목사 는 1920년 목사 안수를 받은 뒤 교회를 안정적으로 이끌며 초기 목회 기반을 다졌다. 

교회의 직분자 역사도 이어졌다. 1917년 첫 장로가 임직 했지만 이름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다. 이후 1933년 홍원조 성도가 두 번째 장로로 임직 했다. 

유상교회는 이후 교세 확장과 함께 교회 분립에도 힘써 1946년 동산부락에 동산교회를, 1965년 발산부락에는 팔복중앙교회를 세우며 지역 복음화에 기여했다. 

교회 건축과 발전의 중요한 전환점도 이어졌다. 

제96회 총회장을 지낸 이기창 목사는 1982년 현재의 유상 교회 부지에 새 예배당을 건축했다. 교회는 과거 신앙의 전통을 기억하기 위해 1945년부터 사용해 온 종을 그대로 옮겨 종탑을 세우고 지금까지 타종을 이어오고 있다. 

이후 제2대 위임목사로 부임한 이길우 목사는 35년간 교회를 섬기며 공동체의 안정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현재는 2017년 부임한 방관전 목사가 제3대 위임목사로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방 목사는 “저희 유상교회는 창립 이후 120년 동안 초대 설립자를 제외하면 위임목사가 세 차례 이어지는 안정적인 목회 전통을 유지해 왔다”라며 “긴 역사 속에서도 잦은 목회 교체 없이 이어진 이러한 목회 계승은 교회 공동체의 신뢰와 연합을 지탱하는 중요한 토대가 됐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유상교회는 목회자와 성도 간의 깊은 신뢰 관계로 잘 알려져 있다. 유상교회 성도들은 목회자를 존중하며 사랑으로 섬겨 왔고, 목회자는 성도들을 향한 목양과 돌봄을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써 왔다. 

이러한 상호 섬김의 전통은 교회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가치로 자리 잡았다. 

방 목사는 이어, “유상교회의 역사는 단순한 연륜의 축적이 아니라 목회자와 성도들이 함께 신앙 공동체를 세워 온 과정”이라며 “서로를 위한 섬김과 사랑이 오늘의 교회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이 같은 신앙 유산과 공동체 전통 이 인정되면서 유상교회는 제110회 총회에서 역사교회로 지정됐다. 

역사 교회 지정은 오랜 신앙 전통과 교회 공동체의 공적을 교단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절차로, 한국교회 역사 보존과 신앙 유산 계승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120주년을 맞은 유상교회는 앞으로도 지난 세월 동안 이어온 복음 중심의 목회와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다음 세대에 신앙의 유산을 전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방 목사는 또, “소중한 역사와 신앙 유산을 잘 보존하고 후세에 전하는 동시에 복음을 위한 사역을 꾸준히 이어가겠다”며 “이번 사적지 지정은 지역 교회가 지닌 역사적 가치와 신앙의 유산을 한국교회 전체가 함께 기억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의미를 되새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방 목사의 인생 방향이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다. 

한 친구로부터 “미래의 꿈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받은 그는 깊은 고민 끝에 “신학을 하겠다”라고 답했다. 

당시만 해도 신학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지도 전도사에게 질문하며 신학의 의미를 알아가기 시작했고, 이는 곧 신학교 진학 준비로 이어졌다. 

그는 이 과정을 “하나님의 분명한 인도하심”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부안이 고향인 방 목사는 부안읍 교회에서 신앙의 기초를 다졌다. 

당시 담임이었던 최현석 목사의 목회 아래에서 성장하며 신앙의 뿌리를 내렸다. 

특히 그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는 아내 양연주 사모다. 고등학교 시절 그에게 진로를 물었던 친구가 훗날 인생의 동반자가 됐다. 

두 사람은 12년간의 교제 끝에 결혼해 25년째 가정을 이루고 있다. 양 사모는 단순한 배우자를 넘어 신앙과 신학의 길잡이이자 목회의 동역자로 함께해 왔다. 

방 목사는 “아내는 말 없이 많은 어려움을 감당해 온 참된 동반자”라며 깊은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했다. 

슬하에는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첫째 박여송은 ‘여호와를 찬송하라’ 는 뜻을, 둘째 박여준은 ‘여호와께서 준비하셨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둘째는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이며 축구선수로 활동 중이다. 막내 박여겸은 ‘여호와 앞에서 겸손하라’는 뜻을 지니고 있으며, 중학교 3학년으로 축구 선수로 골키퍼를 맡고 있다. 

방 목사는 자신의 삶과 가정, 그리고 목회의 여정 모두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다고 강조한다. 

그는 “돌아보면 모든 순간이 은혜였고,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신 길이었다” 라며 “앞으로도 겸손히 사명을 감당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임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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