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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판의 말과 하나님의 아이들'

전북기독신문 입력 2026-09-07
한승진 목사(황등중 교목)

나는 장기를 참 좋아했다. 한나라와 초나라의 전쟁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장기를 두며 한자도 익혔고, 친구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장기판의 질서가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장기는 철저하게 왕 중심이다.상대편 왕을 잡으면 승리하고, 왕을 지키기 위해 장군과 병졸은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다. 말마다 능력과 역할, 한계도정해져 있다. 물론 장기 자체를 나쁘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교육자로 살아가면서 우리가 즐기는 놀이와 문화속에도 알게 모르게 가치와 세계관이 담겨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농촌의 한 중학교에서 교목으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장애 학생도 있고, 다문화 가정의 학생도 있으며, 경제적 어려움으로 교육복지의 지원을 받는 학생도 있다. 성적이 높은 학생도 있고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운 학생도 있다. 아이들을 만나며 깨닫는 것은 아이의 가치는 성적이나 능력, 가정환경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학교는 때때로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서열화 한다. 성적이 높고 운동을 잘하며 리더십이 있는 아이가 주목받지만, 학습이 느리거나 장애가 있거나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아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는 주변으로 밀려나기도 한다. 나는 교목으로서 성경이 말하는 인간의 존엄을 이야기하고 싶다. 


창세기 1장 27절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말씀한다. 사람의 존엄은 성적이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에 있다. 장애 학생도,다문화 가정의 학생도, 교육복지의 지원을 받는 학생도 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삶에도 하나님께서 계획과 뜻을 가지고 계신다고 믿는다. 우리는 흔히 “이 아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먼저 묻는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면 질문이 달라진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이를 통해 무엇을 이루어가실까?” 이 질문은 교육자의 시선을 바꾼다. 부족한 아이를 고쳐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한다. 느린 아이에게 기다릴 이유가 생기고, 다른 아이에게는 그 친구를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기회가 생긴다.


농촌 학교는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함께 살아가는 작은 공동체다. 그래서 학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곳을 넘어 어떤 인간이 되어 함께 살아갈 것인가를 배우는 곳이어야 한다. 사람을 능력에 따라줄 세우는 교육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작게 여기는 어린아이를 귀하게 여기셨고, 외면받던 이들을 찾아가셨다. 세상의 기준으로 작고 약한 사람을 결코 작게 여기지 않으셨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귀한 존재다. 농촌의 작은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며 나는 종종 놀란다.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아이’라고 생각했던 아이가 친구를 가장 따뜻하게 위로하기도 하고, 공부가 어려운 아이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데에는 누구보다 뛰어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아이의 오늘 모습만 보고 내일을 규정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아직 써 내려가고 계신 한 사람의 인생을 우리가 함부로 결론 내리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 교육은 경쟁에서 이기는 법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약한 친구에게 손을 내밀고, 서로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여기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교육은 거창한 프로그램보다 교사가 아이를 바라보는 눈에서 시작된다. 이름을 불러주고, 기다려 주고,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것에서 시작된다. “너는 소중한 사람이다.” “너의 삶에도 하나님께서 뜻을 가지고 계신다.” 이 말을 들려주고 우리의 태도로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복음의 교육일 것이다.이사야 43장 4절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이 말씀 앞에서 장기판의 서열은 사라진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모두 사랑받는 존재다. 


나는 오늘도 농촌의 작은 학교에서 이 믿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싶다. 우리학교가 지식만 가르치는 곳이 아니라,“너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사람이다”라는 사실을 경험하게 하는 곳이 되기를 소망한다. 장기판의 말은 왕을 위해 존재하지만,하나님의 아이들은 서로를 살리기 위해이 세상에 부름받았다. 그러므로 우리의 교육도 누군가를 이기게 하는 교육이 아니라 서로를 살리는 교육이어야 한다.아이들의 미래를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아이들의 삶에 써가실 이야기를 믿고 기다려 주는 것. 이것이 내가 교목의 자리에서 붙들고 싶은 교육의 마음이다. 우리 아이들이 언젠가 학교를 떠나 세상으로 나갔을 때 이것만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나는 성적이나 능력으로 가치가 결정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귀한 사람이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 역시 하나님께서사랑하시는 존귀한 사람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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