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진 목사(황등중 교목)
고대 그리스 우화집 『이솝우화』에는 「소금을 나르는 당나귀」 이야기가 전해 진다. 어린 시절에는 단순한 우화로 읽 었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이 이야기는 어른들에게 더 깊은 교훈을 준다. 매일 무거운 소금 자루를 지고 장터를 오가 던 당나귀는 어느 날 개울에 빠졌다. 등 에 실린 소금이 녹아 짐이 가벼워지자, 그 뒤부터는 일부러 물속에 넘어졌다. 자신의 꾀로 짐을 덜 수 있다고 믿은 것 이다. 그러나 주인은 소금 대신 솜을 실었고, 솜은 물을 머금을수록 더욱 무거워졌다. 당나귀는 결국 잔꾀 때문에 더 큰 짐을 지게 되었다.
이 우화는 우리의 모습을 닮았다. 누 구나 더 쉽고, 더 빠르게 살아가기를 원 한다. 수고를 줄이고 결과를 앞당기는 것을 지혜라 여기지만, 인간의 계산은 하나님의 지혜를 대신할 수 없다. 오늘 날 우리는 성공도, 인정도, 부도 빨리 얻으려 한다. 기다림은 뒤처짐이 되고 성실은 비효율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잔 꾀는 잠시 이익을 가져다줄 뿐, 오래가 지 못한다. 하나님 없이 이루려는 성공 은 결국 무너지고, 정직하지 않은 열매 는 오래 남지 않는다. 성경은 이를 분명히 보여 준다. 야곱은 꾀로 장자의 축복을 얻었지만, 긴 세월 연단을 거쳐서야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 사울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 해 왕위를 잃었고, 다윗은 눈앞의 기회 를 버리고 하나님의 시간을 선택했다. 요셉은 억울한 감옥에서도 성실함을 잃 지 않았고, 하나님은 그의 믿음과 인내를 통해 역사를 이루셨다. 하나님은 재 능보다 중심을 보시고, 결과보다 과정을 귀하게 여기신다.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고린도전서 3장 19절)이라고 말한 다. 사람은 경험과 재산, 권력을 의지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말씀과 믿음을 의지한다. 세상의 지혜가 경쟁에서 이기 는 법을 가르친다면, 하나님의 지혜는 끝까지 바르게 살아가는 길을 가르친 다. 필자는 전북의 작은 농촌 기독교 중학교에서 목사이자 교사로 아이들과 함께 살아간다. 학교 창문을 열면 계절마다 다른 빛깔의 들녘이 펼쳐진다. 씨를 뿌린 다음 날 열매를 기대하는 농부는 없다. 기다림 없는 수확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빨리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 적도, 실력도, 성공도 앞서야 한다고 말 하는 사이 성실과 정직, 인내와 책임은 뒤로 밀려난다.
교육은 많이 아는 사람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바르게 살아갈 사람을 세우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다음 세대는 시험을 잘 보는 아이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실하게 살아갈 사람들이다. 교사가 편법을 선택하면 아이들은 정직보다 요령을 기억하고, 목회자가 하나님보다 세상의 방법을 의지하면 믿음 보다 계산을 배운다. 그래서 기독교 교육은 교실보다 삶에서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수업을 마치고 운동장을 걷는 아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때마다 하나 님의 마음을 생각한다. 아직 미완성인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포기하지 않으셨듯이 교육도 기다림이어야 한다.
농촌의 들녘은 계절을 재촉하지 않는다. 봄에 뿌린 씨앗은 여름의 햇살과 비를 견디고 가을이 되어야 황금빛 이삭으로 익는다. 하나님의 일하심도 이와 같다. 우리는 열매를 서두르지만, 하나 님은 먼저 뿌리를 깊게 하신다. 사람은 높은 자리를 성공이라 하지만 하나님 은 낮은 자리에서 충성하는 사람을 귀 하게 여기신다. 예수님의 생애가 이를 가 장 분명하게 보여 준다. 주님은 권력도 명예도 붙잡지 않으셨다. 십자가 앞에서 도 자신의 길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셨다. 세상은 십자가를 실패라 했지만, 하나님은 그 순종으로 인류를 구원하셨다. 그래서 바울은 "십 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고린도전서 1장 18절)이며 "하나님의 어리석음 이 사람보다 지혜롭다"(25절)고 선포한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싶은가. 좋은 성적을 만드는 교사인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보여 주는 목사인가. 세상은 재능 있는 사람을 찾지만, 하나님 은 신실한 사람을 찾으신다. 오늘도 예 배당 종소리에 맞춰 아이들이 하나둘 예배실로 들어온다. 아직은 말씀의 의미 를 다 알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 은 씨앗처럼 언젠가 그 마음에 싹을 틔 울 것을 믿는다. 그래서 필자는 눈에 보 이는 성과보다 믿음의 뿌리를 가꾸는 일에 힘쓰려 한다. 아이들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요령보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 가는 지혜를 가르치고 싶다. 학교를 둘러싼 들녘의 벼는 오늘도 바 람 앞에 고개를 숙인다. 익을수록 더욱 낮아지는 벼를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원 하시는 사람의 모습을 배운다. 참된 지 혜는 자신을 높이는 데 있지 않고 하나 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 데 있다. 인간의 잔꾀는 순간의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영 원한 열매를 맺지 못한다. 정직과 성실, 인내와 순종의 씨앗은 반드시 하나님의 때에 열매 맺는다. 그 믿음이 오늘도 농 촌의 작은 기독교 중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배우는 가장 큰 교육이며, 하나님 께서 내게 맡기신 가장 귀한 목회의 길임 을 고백한다.<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