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구조적, 기능적)에 따라 창조된 인간이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세상의 왕이 되고 싶어 하였던 아담의 자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가는 목적이 기독교의 본질일 것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목적을 위해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이 자신의 추악함을 직시할 수 있도록, 살아 가는데 때로 실수와 실패와 더러운 범죄도 허락하시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혜를 떠난 인간은 절대 영원한 세상의 왕일 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시기 위해 때로는 질병도 허락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과 은혜로 충만한 참된 행복의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는 거룩한 하늘나라 백성으로 훈련시키기 위해 이 세상에 보내셨다. 그래서 옛 하늘, 옛 땅이라는 이 세상의 물질과 공간에 도저히는 살 수 없는 공간이다는 것을 알게 만드신다. 그래서 이 세상의 삶 속에서 마주치는 사건과 상황과 정황들 속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만을 소망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룩하게 되어져 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질 때 우리는‘자기부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타락한 ‘자기’가 부인되기 시작하면, 지금까지 자기를 왕처럼 섬기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다른 이들을 밟아왔던 옛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과 다른 이웃들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불태우기 시작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의 삶인 것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다 가신 그 하늘나라의 삶의 원리가 진정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들에게 참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다는 것을 이 땅에서 배우는 것이고 그렇게 지어져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십자가의 삶을 기꺼이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성경은 ‘천국’이라 부르는 것이다.
천국은 영생하는 곳이다. 그리스도인은 태초에 공간에 계신 하나님의 마음속에 우리가 있었고 우리가 육을 입고 역사에 내려와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고 그분을 찬양하고 연합되어 가는 생명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명나무를 스스로 따먹고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콧김으로 생기를 부어 넣어 주셔야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영생을 거저 부어 주셔야 우리가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 생명을 주세요”라고 부르짖어야 된다. 즉 “나는 죄인이구나, 나는 죽은 자이구나“하는 것을 자백해야 한다.
그런데 교회에 오면 말씀이 나의 죄를 밝히니까 마음이 많이 아프고 괴롭게 된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말씀으로 우리가 철저한 죄인이라는 것을 말을 하기가 어렵다. 교회가 세력화가 되기 시작하면 교인 하나하나가 힘이 되니까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서는 그들이 좋아하는 말만을 하게 되므로 교회도 역시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기복적인 신앙으로 흐르게 된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영광만을 위하여 종교생활을 하게 된다. 그래서 너도 좋고 나도 좋고 적당히 신앙생활을 하게 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나는 죄인 중에 괴수이다” 라고 신앙 고백하였다.
하나님께서 나 같은 죄인에게도 영생을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내가 뒤집혀져야 만 한다. 그렇게 깨닫게 될 때 도덕적, 윤리적인 것보다 한 차원이 높은 삶을 살게 되며 진짜로 하나님과 연합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렇다면 기독교인 들에게서 “나에게 복을 주세요” 라는 수준을 벗어나 하나님 “저는 복이고 상이고 받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이 나와야 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영생의 복을 주셨다고 하니 이제 저는 어떻게 해야 되나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내가 무엇을 하여서 하나님을 감격을 시키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고백을하여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서 기독교는 복을 받는 종교가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도 샤만(Shaman)이라는 중재자가 필요하게 되고 축복권과 저주권을 가진 자라고 여기는 삯군 목사에게 복을 빌어달라고 요구를 하는 것이다. 그래나 자기가 원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먹고 금식하며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꺽고 자기의 원하는 것을 이루려고 한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데로 살아가야 된다. 우리는 사업을 시작할 때 내가 원하는 복을 받게 해주시라고 하나님께 개업예배를 드린다. 그 때도 원하던 복은 세상의 부귀영화의 복이 아니고 신령한 하늘의 복이어야 할 것이다.
영생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면 지금 내가 어떻게 신앙생활하고 있나? 영생의 문제가 해결 되였나? 확실히 그 나라(Kingdom of Heaven)와 그 의(Righteousness)를 구하였나? 구원을 받았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바리새인과 같이 기계적인 신앙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영생에 관심이 있다면 영원한 생명에 문제에 대하여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를 만난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심히 고민을 해야 될 것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기독교의 본질을 확실히 깨닫고 주님께서 가장 원하는 복음 전도에 필요한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