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량 변호사(전주채비교회)
“1996년 청년 수련회를 찾아갔던 그 날이 제 신앙의 전환점이었습니다.”
미국 뉴저지에서 청년들을 섬기며 복음을 전해온 정형량 변호사와 박운신 권사(전주채비교회)는 지금도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기도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도 청년들 곁에 앉아 함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습니다.”
정형량 변호사와 박운신 권사는 지금까지 미국에서 청년들을 돌보는 사역을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하나님이 맡겨주시는 사역을 끝까지 감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그는 청년들을 향한 섬김을 자신의 사명으로 받아들이게 됐고, 20 여 년 동안 미국에서 유학생과 청년들을 돌보며 신앙의 멘토 역할을 감당해 왔다.
하지만 그의 이민 생활은 처음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1984년에 연세대 상경대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주해 30년을 IT 전문가로 살아왔다. 50대 중반에는 뉴저지 주립 럿거스 로스쿨을 졸업하고 펜실베이니아와 뉴저지 변호사로 10년을 커뮤니티를 위해 사역을 했다.
정 변호사는 처음 미국에 갔을 때 200곳이 넘는 회사에 이력서를 제출 했지만 채용 제안을 받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세계적인 제약회사에 입사하는 기회를 얻었다. 세계 500대 기업으로 꼽히는 글로벌 기업에서 3 년 동안 근무하며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나 2000년 회사가 합병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다. 예기치 못한 실직은 또 다른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그는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청년들을 향한 섬김 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정 변호사는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이 청년들을 돌보는 것이라는 마음이 점점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그가 섬겼던 청년들 가운데는 지금도 신앙 안에서 성장해 교회의 일꾼으로 세워진 이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채비교회 김은화 장로의 딸을 꼽는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필라델피아로 유학을 온 그녀가 낯선 환경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정 집사 부부의 따뜻한 보살핌을 받았다.
“매주 금요일이면 우리 집에 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거의 집에서 생활하다시피 했죠. 주일에는 함께 예배를 드리고 다시 학교까지 데려다 주곤 했습니다.”
정 변호사 부부는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프로그램보다 한 끼 식사와 따뜻한 관심, 그리고 함께 예배드리는 공동체라고 믿는다.
그들은 “청년 한 사람을 품는 일이 결국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이라며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청년들을 끝까지 사랑으로 섬기고 싶다”라고 말했다.
정 변호사가 법조인의 길에 들어서기까지는 적지 않은 두려움이 있었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에는 적지 않은 나이였고, 현실적인 부담도 컸다.
그러나 신앙 공동체는 그의 등을 밀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로스쿨에 입학하기 전에는 걱정이 많았습니다.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 까’라는 생각이 컸죠.” 그에게 결정적인 용기를 준 것은 목장 청년 공동체에서 들은 한 이야기였다.
당시 65세의 한 여성이 로스쿨을 졸업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결국 그는 2008년 로스쿨에 입학했 다. 3년간 풀타임 과정을 소화하며 변호사의 꿈을 향해 달려갔다. 쉽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곁에는 아내 박운신 권사가 있었다. 정 변호사는 “제가 공부하는 동안 아내가 생활비와 가정을 책임졌습니다. 아내의 희생이 없었다면 로스쿨을 마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집사는 어린 시절 전주에서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했다. 하지만 1970 년대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하면서 집안은 급격히 어려워졌다. 전주시 중앙동 일대에 있던 집과 사무실, 대지까지 모두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다.
그런데 마침 먼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던 어머니의 형제들이 가족을 초청하면서 미국으로 건너가 낯선 땅에서 인생을 다시 시작했다.
박운신 권사 역시 이민 초기 언어의 장벽을 넘어 자신의 길을 개척했다.
그는 “처음 간호사 면접을 볼 때 영어 회화가 익숙하지 않아 많이 긴장 했다”라고 말했다. 그가 채용된 곳은 펜실베이니아의 한 유명 병원 심장내과였다.
고도의 전문성과 숙련도를 요구하는 부서였지만 그는 성실함과 실력을 인정받으며 의료 현장을 지켰다.
부부는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하며 가정을 세웠고, 동시에 유학생과 청년들을 위한 섬김도 멈추지 않았다.
정 집사와 박 권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이 있다면 끝까지 감당하고 싶다”라며 “우리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여력이 있는 한, 그 섬김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에게 나눔은 가진 것을 베푸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삶으로 흘려보내는 신앙의 실천이었다. 그래서 부부는 오늘도 도움이 필요한 청년들의 곁을 묵묵히 지키며, 믿음으로 심은 작은 씨앗이 다음 세대를 세우는 열매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임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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