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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삶이 합당한 보상받도록 봉사에 최선”

전북기독신문 입력 2026-02-07

이정복 장로(전주사랑의교회)

 전주사랑의교회 이정복 장로는 퇴직 이후에도 쉬지 않고 전세버스를 통한 

섬김이라는 새로운 사역의 길을 열며, 지금까지 현장을 누비는 선교적 삶

을 이어오고 있다. 


이 장로가 대표로 섬 기고 있는 전세버스기독선교회는 2013년 설립돼, 차

량을 매개로 한 실천적 섬김을 이어오고 있다. 


전세버스기독선교회는 사랑의교회 이정복 장로와 양일동 집사를 중심으

로 시작됐다. 단순한 이동 수단 제공 을 넘어, 차량을 통해 이웃에게 다가 

가는 선교를 지향했다. 


이 장로는 상록회 회원들과 함께 연탄 배달 사역에 나섰고, 경로당을 찾아 

어르신들을 섬기며 지역사회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왔다. 이 장로의 사

역은 교회 울타리에 머물지 않고 직장선교 활성화에도 앞장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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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믿음으로 교회를 섬기고 직장에서 전도의 삶을 살아온 이정복 장로 부부가 손녀 돌을 맞아 기쁨을 나누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직장 안에 선교회를 조직하고 예배가 회복되도록 

역사하셨다. 항상 ‘아멘 (Amen)’의 신앙으로 응답해 온 그의 삶 속에서, 직

장은 곧 선교지가 됐다. 

동전주전화국에서는 직장선교회가 조직됐고, 전임 목회자를 세우는 결실 

로 이어졌다. 열린교회 이광우 목사가 지도목사로 섬기게 됐다. 당시 이 목 

사 역시 사역지를 놓고 기도하던 중이었다. 

남원전화국에서도 직장선교회가 활성화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됐다. 

이 장로는 “모든 사역은 혼자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동역자들의 헌

신으로 가능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퇴직 전까지 소천한 육병엽 장로와 함께 전북직장선교연합회를 섬기

며 매주 목요일 CCC회관에서 조찬 기도회를 인도했다. 

직장인 신앙인들이 말씀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도록 돕는 사역이었다. 

이정복 장로는 2009년부터 전주사랑의교회에 출석하며 봉사위원회와 총

무위원회를 거쳐, 2026년에는 복지 위원회와 재정부 사역을 감당하고 있 

다. 

교회 내 전도위원회를 섬길 때는 형식적인 전도에서 벗어나 실제 삶으로 복

음을 전하는 모범을 보였다. 매주 수요일 예배를 드리며 전도의 방향성을 

함께 모색했고, 봉사위원장을 맡았을 때는 지역과 타 교회의 필요에 적극 

응답했다. 

특히 반찬봉사단을 조직해 지역 어르신들을 섬긴 사역은 대표적이다. 매주 

목요일마다 반찬을 준비해 초기 20가정의 어르신들에게 전달하며 지속적

인 돌봄을 실천했다.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수련회에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후, 하나님 나

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선택했다. 군 복무 기간 동안 신앙은 더욱 견고해졌

다. 그러나 직장생활 중 한때 안일한 신앙에 빠졌고, 그 시기에 인생의 전환

점이 되는 사건을 맞았다. 

북전주전화국에서 근무하던 시절, 퇴근길에 대형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다가 택시 추돌 사고로 정신을 잃을 만큼 큰 사고였지

만, 응급차에 실려가면서 “그 순간 ‘너, 교회 다니는 사람이 이렇게 살아서 

되느냐’는 음성을 들었다”고 했다. 

이 경험은 그의 신앙을 다시 깨우는 계기가 됐다. 이후 그는 ‘아멘’ 의 신앙

으로 응답하며, 찬양대와 주일학교 교사 등 섬길 수 있는 모든 사역에 헌신

했다. 

그날 사고에도 그에게 의료적으로는 찰과상 외에 큰 부상이 없었다. 대형 

사고였지만 머리털 하나 다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보호해주신 은혜였다

고 고백한다. “그 사고는 제 삶과 신앙을 다시 세우신 하나님의 경고이자 사

랑이었다” 라고 말했다. 

이 장로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이삭처럼 하나님의 인

도하심을 경험해 왔다고 고백한다. 전신전화국 입사 역시 인간적인 조건을 

넘어선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이다. 

그는 “범사에 형통함을 주신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이제는 섬김으로 흘려

보내는 것이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이정복 장로의 신앙 여정은 개인의 헌

신을 넘어 가족을 향한 책임과 사랑으로 확장돼 왔다. 

이 장로는 24세라는 이른 나이에 부모님을 모두 여의었다. 당시 막내 동생

은 초등학교 4학년, 바로 아래 동생은 대학교 1학년이었다. 막내와는 15년

의 나이 차가 날 정도로 큰 형이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가장의 역할을 감당

하게 됐다. 부모의 빈자리를 대신해 동생들의 학업과 생활을 책임지며 살아

온 시간은 쉽지 않았지만, 그는 이를 피하지 않았다. 

그 곁에는 늘 아내 김정숙 권사 가 있었다. 아내 김정숙 권사와의 만남은 남

원전화국에서 시작됐다. 두 사람은 직장 동료였고, 당시 김 권사는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었다. 이 장로는 성경책을 직접 사서 전하며 아내를 전도했 

다. 이후 매주 함께 교회를 출석했다. 

그는 “아내는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주신 존재였 

다”라며 “그 마음 자체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다”라고 고백한다. 

부부의 삶에는 세상적인 여유나 긴 휴가가 없었다. 여름휴가와 겨울휴가는 

늘 교회의 수련회 일정으로 채워졌다. 

그러나 김 권사는 이에 대해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묵묵히 

동행하며 가정을 지켰다. 자녀들도 자연스럽게 교회 수련회에 참석하며 공

동체 안에서 성장했다. 현재 두 자녀 모두 교사로 재직 중이며, 장녀는 목회

자의 아내로서 사역 현장에서 섬기고 있다. 

/임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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