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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 은퇴 아니고 순회선교 사역 시작”

전북기독신문 입력 2023-01-20

더온누리교회 은퇴 정용비 목사

 정용비 목사는 “바울은 부할 때 가난했고 가난할 때 부를 누릴 줄 아는 자 

유인이었다. 


 그는 풍유와 비천의 두 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달인이었다”면서 “그

런 바울을 보며 지난 40년 동안 항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값지게 살

기로 작정했다”라고 밝혔다. 


 그런 그가 이제는 ‘순회사역’이라는 십자가를 가슴에 부여안고 새 출발을 

다짐했다. 


 “조기 은퇴가 아닙니다. 순회사역, 즉 순회 선교사라는 사역을 새롭게 시

작하게 되었습니다.” 


 정 목사는 이를 위해 ‘더월드미션선교회’를 설립했다. 

은퇴하면서부터 베트남순회선교사로 나서, 신학과 성경을 그리고 한국어

를 가르친다. 


 정 목사는 이제 하나님으로부터 순회선교사의 임무를 부여받고, 그 부르 

심에 합당한 십자가 군병이 되었다.

 

제 2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정용비 은퇴 목사를 만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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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생을 살아온 목회의 길에서 은퇴 하신 소감이 어떠신지?

 “65세에 일찍 은퇴한다며 아쉬워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제2의 도전을 위

해 현역에서 지금 내려오는 것이 맞다고 본다. 그리고 수년 전에 일찍 은퇴

한다고 이미 밝혔다. 약속을 바꿀 생각도 없었지만 한 번 말한 사실을 뒤집

는다면 신뢰가 무너지고 어떤 사람은 시험에 들 수도 있다. 사실 내 성격상 

조용히 뒤에서 일하는 것이 적성에 맞다. 이를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그동안 

목회에 있어서만은 주도적으로 일해왔기 때문인 듯하다. 그만큼 목회가 좋

았다. 처음 전주온누리교회에 부임했을 때 교회가 분열된 상태여서 1년여 

동안 몸살을 앓았지만 이후에는 순풍에 돛을 단 듯 잘 지내왔다. 

나는 행복한 목회를 한 사람이다.”


 -. 목회는 어떻게 시작하셨는지? 

“어릴 적부터 교회 어르신들이 ‘너 목사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목사가 되겠다고 생각을 했고, 목회의 길을 걸어왔다. 

그때는 목회가 내 본성을 거스르는 일인 줄 몰랐다. 신학교에서는 공부가 

너무 재미있었다. 성경 공부에도 재미를 붙여서 제자훈련 바람이 일 때 서

울에서 열리는 모든 성경 공부를 다 찾아다닐 만큼 열심히 공부 했던 기억

이 난다.” 


 -. 목회 여정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전주온누리교회에서 더온누리교회로 3년 전에 있었던 교회 분립이다. 

상상을 못했던 일이었다. 전주온누리교회 가 계속해서 부흥했고, 본당까지 

성도들이 넘쳐나서 모니터 화면으로 예배를 드려야만 했다.

더 이상 성도들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도 없었고 모니터를 더 설치할 수

있는 장소도 없었다.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기였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더 

커지길 원하겠지만, 우리는 대형교회로 가지 말자는 의견에 성도들이 마음

을 모아줬던 것이 너무 감사하다. 한 차례 분립이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

다. ‘내가 나가면 좀 따라 나오려나’ 하는 생각에 직접 분립 개척을 시도했

던 것이다. 

장년 성도 500여 명이 함께했다. 성공적인 분립 개척을 이룰 수 있었다. 

건강한 분립이 이처럼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내 목회 인생에서 이보다 더 기억에 남는 일은 없을 것 같다.”


 -. 대형교회로의 길에서, 분립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

는데. 

“대형 교회 목회를 어떻게 내려놓을 수 있었느냐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민망했다. 나는 대형 체질이 아니다. 반대로 성도가 너무 적으면 교회가 하

고 싶은 일을 못한다. 300~500명 규모가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장년이 1,000명 정도였을 때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알았다. 그런데 2000 

명이 넘어가니까 저 사람이 등록을 했는지 안 했는지 가물가물해지고, 길

을 가다가 누가 인사를 해도 우리 교인인지 아닌지도 잘 구분이 안 됐다. 

나는 아는데 자신을 모를 것이라 생각하고 그냥 지나가는 분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들이 내 안에서 해결되지 않고 있는 중에 분립을 선택했다.”


 -. 많은 교회들이 리더십 교체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더온누리교 회는 어떻게 준비해오셨는지? 

“분립해서 나올 때 18년간 동역해 온 김종홍 목사와 함께했다. 공동의회를 

통해서 나와 똑같이 담임목사가 되는 것으로, ‘동사목사’로 의결했다.

내가 은퇴했기에 김종홍 목사가 혼자 더온누리교회의 담임목사가 됐다.

우리 교회의 특징 중 하나가 목회자를 청빙할 때 공개채용을 거의 하지 않

는다는 점이다. 가능하면 지인들을 통해 충분히 알아보고 채용을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이 인품이고 성격인데, 설교 몇 번 들어 보고 사람을 어찌 알

겠는가. 이미 오랫 동안 함께해오면서 충분히 검증된 목회자에게 안정적으

로 리더십을 이양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 면에서 김종홍 목사는 더온누리

교회를 담임할 실력과 자질이 충분하다. 우리 교회는 리더십 교체가 아니

라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 어떤 삶을 계획하고 계시는지? 

“더온누리교회는 원로 제도가 없다. 후임 목회자가 자유롭게 목회할 수 있 

도록 전주를 떠나 계룡에서 살고 있다. 

작은 공간이 마련돼 동네 주민들을 대상으로 성경공부도 하고 훈련도 한

다. 여름과 겨울에는 선교지를 다니며 순회 선교사로서 살 것이다. 선교사

들이 현지인 신학생과 목회자를 길러내는 사역을 많이 하지만 한계에 부딪

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들을 돕기 위해 ‘더월드미션선교회’를 설립했

다. 베트남에서부터 사역을 시작한다. 선교지에서 나는 신학과 성경을 가르

치고, 아내는 한국어를 가르칠 작정이다.”


 -. 더온누리교회 공동체에 당부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우리가 2020년 첫 주일에 분립개척해서 7주간 예배를 드렸다. 

그당시 코로나19 확산으로 한동안 모이지 못하다가 얼마 전부터 예배를 드

리기 시작했다. 

분립할 때 장년 500여명이 함께 왔는데, 코로나가 끝나가는 지금 장년 

1200여명이 된다. 정말 기적과도 같이 감사한 일이다. 우리 교회는 30~40

대 젊은이들이 70%다. 

교회마다 주일학교가 없어진다고 하는데 우리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서 

얼마 전에 초등부를 2개에서 3개 부서로 나누었고, 청년부도 2개 부서로 

나눴다. 지역사회에 ‘이 정도는 아닌데’ 라고 민망할 정도로 소문이 좋게 났

다. 

더온누리교회가 주님 오실 때까지 건강한 교회의 지표를 계속 유지해 주기

를 당부하고 싶다. 우리 교회 핵심 가치가 ‘예수님처럼’ 이다. 다른 것 없이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예수님처럼 살아가는 공동체가 되길 

바란다.” 


                                                                                                '임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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