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문성모 목사“당시 마부는 계약직 노동자, 장로임직땐 상인”
김제금산교회(김종원 목사)가 지난 18 일(토) ‘이자익 목사, 그 생애를 묻고
답하다’ 출간을 기념하는 감사예배를 드렸다.
문성모 목사가 지난 18일 김제금산교회에서 열린 ‘이자익 목사, 그 생애를 묻고 답하다’ 출간 기념 감사예배에서 그동안 잘못 알려진 이자익 목사에 대해 밝히고 있다.
‘이자익목사기념사업회(이사장 문성모 목사)’가 주관해 출간한 이 책은 대
전신학대학교 전 총장이자 이자익 연구자인 문성모 목사가 저술한 전기(傳
記)로, 한국 장로교 초창기 지도자 이자익 목사의 생애를 문답 형식으로 정
리했다.
문 목사는 “한국 교회사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동안 이자익 목사에 대
한 왜곡된 인식과 오류가 적지 않았다” 라며 “역사적 사실을 바로 세우고자
집필했다”라고 밝혔다.
이자익 목사는 본래 조덕삼 장로의 마부로 일했으나, 1902년 호주 선교사
최의덕(루이스 테이트)을 통해 복음을 접했다.
이후 조덕삼과 함께 3년 동안 학습을 받고 세례를 준비하면서 금산교회의
역사가 시작됐다.
이 목사는 장로교단의 분열 이전까지 총회장을 세 차례 역임했으며, 호주
선교회의 요청으로 거창지부 순회목사로 사역하며 31개 농촌교회를 돌봤
다.
75 세의 고령에도 대전신학교(현 대전신학 대학교) 설립과 대전노회 창립
에도 기여하는 등, 교단과 한국교회의 기반을 다지는 데 큰 발자취를 남겼
다.
문 목사는 그간 교계에 널리 퍼진 “마부가 상전을 제치고 먼저 장로가 되었
다”는 이야기가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 했다.
그는 “이자익 목사는 조덕삼 장로의 마부였으나, 이는 종이 아닌 급료를 받
는 계약직 노동자였다”라며, “1908년 장로로 임직할 당시에는 이미 독립하
여 상인이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자익 목사의 부친이 ‘이부일 (李富日)’임에도 불구하고 ‘이기진’으로
잘못 알려져 있던 점을 바로잡았다.
문 목사는 대전신학대 총장 시절이던 2004년, 학교 50주년사 편찬 과정에
서 처음 이자익 목사에게 주목했다고 전했다.
이후 후손들의 증언과 묘비, 일기, 당회록 등 1차 사료를 중심으로 그의 생
애를 재구성하며, ‘신앙의 발자취’를 복원했다.
감사예배에서 문성모 목사는 금산교회 창립 120주년을 기념하여 책을 헌
정 했다.
금산교회는 이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문 목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김종원 목사는 “이자익 목사님의 신앙적 유산을 이 시대에 다시 조명하게
된 것은 금산교회의 사명과도 맞닿아 있다”라며 “선배 목회자의 발자취를
본받아,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과 직분을 충실히 감당하는 교회가 되겠다”라
고 전했다.
/임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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